Page 8 - 민족화해 104호 202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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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6·15공동선언 20주년 기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남북관계

                                                                                                         김연철 통일부장관

                          210여 개국, 300여만 명. 코로나19가 발생한 전 세계 국가와 확진자 수치이다. 부정확한
                        값을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숫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
                        느 날 갑자기 등장한 이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는 빠른 속도로 국경을 넘으며 전 지구를 위협하
                        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오랜 시간 지켜온 삶의 방식 중 많은 부분을 재빨리 수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는 “지금부터 정부와 개인이 내릴 결정이 앞으로의 세계를 결정할 것이며, 이는 보건 시
                        스템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문화를 바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현재까지 코
                        로나19 대응에 있어 세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야 할 때이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그리고 우리가 사는 한반도의
                        정세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2020년 우리에게 선견지명의 지혜가 필요하다.

                          역사상 많은 국가들이 서로를 잠재적인 경쟁자나 적으로 여기며 때로는 무력을 동원한 전
                        쟁을 치러왔다. 따라서 전통적 안보 개념에서 가장 큰 위협은 무기나 병력과 같은 군사력이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새로운 안보 개념의 등장을 알렸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건강, 경
                        제, 환경 등 인간 삶의 포괄적인 질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 비전통적 안보 개
                        념의 특징이다. 특히, 위협의 원인이나 영향이 초국가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에
                        게 공통의 문제가 되고 있으며, 장기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을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적
                        으로 보는 제로섬(zero-sum) 게임에 가까운 전통적 안보와 달리, 비전통적 안보에 있어서는
                        개방적인 연대와 협력을 통한 윈윈(win-win)이 가능하다. 물론 비전통적 안보 영역의 등장으
                        로 전통적인 안보의 영역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전통적 안보 영역에서의 연대와
                        협력이 지속 심화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통적인 안보 영역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신뢰의 축적을 통해 군사적 긴장 관계가 평화적인 공존 관계로 바뀌는 것이다.

                                            방역 선진국에서 경제와 평화의 선진국으로

                          한반도에서도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 분단 이후 75년 간 남북은 줄곧 군사적 긴장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한편으로는 서로 마주하여 살아가면서 사실상 하나의 운명을 공유해 왔다. 비
                        록 지금은 철조망이 경계를 나누고 있지만 여전히 비무장지대를 따라 산불이 번지고,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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