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민족화해 105호 2020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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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이야기
우리는 천군에서는 작지만 떠들썩한 잔치 한마당이 열렸다.
우리 할 일을 민화협이 주최하고 연천군이 초청하여 북을 비롯해
한다 남한, 우즈베키스탄, 중국 등 4개국이 참여한 ‘2014
국제유소년(U-15)축구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남측
염규현 정책홍보팀 부국장 에선 경기 풍생중학교, 강원 주문진중학교, 인천 광성
중학교 선수들이 참가했고, 북은 4·25체육단이 대표
험악한 말들이 유령처럼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다. 로 왔다.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된 대회는 결승전에
혐오와 증오가 난무하고, 한 편에선 그저 침묵하는 자 서 북 4·25체육단이 우즈베키스탄 FC 분요도코르팀
들이 어둡다. 이대로 세상은 파멸할 것인가, 그저 하늘 을 4대 0으로 크게 이기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을 올려다보는 이들도 보인다. 입버릇처럼 통일을 이
야기하고, 평화를 외치던 이들은 지금 다 어디에서 울 행사를 준비하며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적
분을 삼키고 있는가. 혹은 부끄러워하고 있는가. 지 않았다. 남북관계가 긴장된 상황이었고, 북측에서
도 남측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대통령은 지난 현충일에 “평화는 국민이 마땅히 누 못하고 있었다. 정세상 북측 선수단들은 남측 체류 기
려야 할 권리이며, 두 번 다시 전쟁 없는 평화의 한반 간 내내 연천군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연천군 전곡읍
도를 만드는 것은 국민이 부여한 국가의 책무”라 강조 에 위치한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서 ‘격리 아닌 격리’
했다. 하지만 애써 만들어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 생활을 해야만 했다. 당시 민화협 사무처 직원도 일부
소가 허망하게 무너진 지금 난 마르크스의 말이 더 아 함께 했다. 물론 층별로 따로 따로 지내야 했지만.
프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이리저리 해석해왔지
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행사는 무사히 치러졌고, 환송 만찬 때 4개국 청소
지난 70여 년 동안 ‘해석의 달인’이 되어버린 것일까? 년들은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친해졌는지 함께 사진
을 찍고 다시 만나자고 손을 굳게 잡았다. 뭉클했던 당
아이들 손에 쥐여 줄 수 있도록 시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벌써 6년 전 일이 되었다. 2014년 11월 경기도 연 그런데 일정을 치르던 중 당시 민화협 대표상임의
장이 예정에 없던 미션을 주셨다. 다음과 같은 매우 중
차대한 미션(!)이었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았는데, 서울 구경
한 번 하지 못하고 연천에서 갇혀 있다가 돌아가는 게
영 마음이 아파요. 작더라도 돌아가는 길에 하나씩 손
에 쥐여 줄 수 있는 선물을 생각해 봤으면 해요. 그네
들이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가능하면 질 좋은 것으로
마련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곤 돈을 건네주셨다. 민화협 재정이 아닌 본인
의 사비로 준비하라는 말씀이셨다. 순간 작지만 신선
한 충격을 받았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난
그저 행사가 사고 없이 잘 치러지는 데에만 집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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