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민족화해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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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문화 모니터
문학 속
통일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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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도착한
20세기의 바람
식민지 조선 공산주의 운동을 감내한
세 여전사의 파란만장
조선희의 『세 여자』론
오태호 문학평론가
20세기의 빛바랜 신화
모든 기록은 한 장의 빛바랜 사진에서부터 시작된다.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이 양피지 한 장에 콜롬비아의 역사를 담아냈듯,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초기 역사에 새
겨진 신산한 삶과는 무관한 듯 청계천 다리 아래에서 다리를 드러낸 세 여성은 부제처럼
‘20세기의 봄’을 표방한다. 그러나 그 봄은 여름날에 찍힌 ‘반어적 봄날’이다. 이후 세 사
람의 인생에 펼쳐질 혹독한 시련을 예견하지 못한 채 일종의 일장춘몽처럼 회상될 사진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초반 이 세 신여성의 풍경은 얼마나 아
름다운 청춘의 한 장면인가. 작품의 <프롤로그>는 1991년 12월 박헌영과 주세죽의 딸인
‘비비안나 박’이 서울을 방문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60대 중반의 그녀는 칙칙한 흑백
사진들 가운데 유난히 밝고 화사한 한 장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