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민족화해 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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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헤어진 가족들을 만났고 북측 81가족이 찾는
남측 가족들의 만남이 이뤄졌다. 모두 건강상의 이유
였다. 2차 상봉에는 80대 할머니가 지병의 부작용이
나타나 이틀 만에 상봉을 포기하고 중도 귀환하는 안
타까운 일도 있었다.
백성규 할아버지는 101세로 이번 상봉행사 전체에
서 가장 최고령이었다. 이번에 상봉행사에 참가하는
분들 중에서 가장 고령이시라고 말을 건넸더니 “101
살 백 모 씨가 온다고 신문에 나왔던데”라고 농담까
지 하실 정도로 정정하셨다. 대부분 아들과 손녀의 부
축을 받으며 걸으셨고 힘에 부칠 때에는 휠체어를 탔
다. 안타깝게도 백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던 아들은 먼
저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 만나는 건 북측 며느리와
손녀였다. 세월에 무뎌진 듯 백 할아버지는 눈물은 짓
지 않았고 담담하게 북측 가족들과 만났다. 하지만 가
족을 생각해 수저부터 내복, 의류 등 갖가지를 준비했
고 신발은 30켤레나 준비해 건넸다.
100세 강정옥 할머니는 이번에 북측 여동생을 만
났다. 여동생이 고향인 제주도에서 영등포 방직공장 상시적인 상봉과 서신 왕래,
에 취직을 해 서울로 올라간 그 길이 마지막이었다.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가 되뇌던 ‘우리 정화, 우리
정화’. 17살이던 동생 정화가 사라진 후로 모든 가족 2018년 7월 기준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는 모두 13
들은 17살 소녀가 길을 지나가는 것만 봐도 정화를 만 2천여 명, 그 가운데 7만 5천여 명이 사망했다. 생
떠올렸다. 강 할머니는 동생에게 제주도 너른 땅에 가 존해 있는 5만 6천여 명 가운데 80세 이상이 3만 5천
서 같이 살자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는 동 여 명으로 62%가 넘는다. 이번에 열린 21차 이산가
생과 같이 가지 못하겠지만 나중에 제주도에 한번 들 족 상봉행사가 2년 10개월 만에 열렸는데 이번에 상
르라고 하겠다며 상봉 이후를 낙관했다. 봉을 한 대상자가 겨우 170명이니 이런 식으로는 여
상봉이 모두 끝나고 남측 가족이 버스에 오르고 난 전히 남아있는 5만 6천여 명의 한을 풀기란 산술적으
뒤 한 북측 가족은 “100살까지 살아. 100살까지 살아 로 불가능하다.
야 한 번 더 보지.”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며 손가락 열 상봉자분들은 하나같이 지금 내 가족의 눈을 바라
개를 펴서 연신 흔들었다. 하지만 100살까지 살 수 있 보고 있으면서도 다음날에 느낄 아쉬움, 완전히 이별
을지 예측할 수 없고 100살까지 살아도 북측 가족이 할 때의 슬픔, 남(南)으로 돌아오고 난 뒤 사무칠 공허
먼저 떠났을 수도 있다. 백 할아버지와 강 할머니의 감을 우려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김춘식(80) 할아
상봉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상봉이었다. 버지는 2시간씩 진행되는 상봉 시간이 30분 정도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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