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민족화해 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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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안 되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동생들을 회소의 문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 행사
데려가서 같이 살고 싶지만 그게 안 되더라도 우편 왕 는 북한에게 지금까지 이벤트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
래는 가능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이다. 상설면회소가 문을 연다 해도 남북관계 부침에
사진기자였던 김봉어(90) 할아버지도 북측 여동생 따라 언제든지 다시 문이 닫힐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본인이 쓰던 카메라로 연신 정부는 지금까지 공언했던 상설면회소 개소와 전
셔터를 눌렀다. 사진으로라도 간직하고 싶은 여동생 면적인 생사확인, 서신교환 등을 동시에 추진하되 북
그리고 상봉의 순간순간이었을 것이다. 상봉자로 선 한과 별도의 조약을 체결해 서신 교환이라도 지속적
정된 뒤 계속 잠을 못 잤던 김 할아버지는 여동생을 으로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통일부는 이
만나고 나서야 모처럼 잠을 잘 잤다고 했다. 김 할아 미 100명 내외의 상봉 방식의 한계를 인정하며 다음
버지는 이튿날 “한 번 만나면 끝인 게 가장 큰 걱정” 부터는 생사확인 의뢰를 250명에서 더 확대할 수 있
이라고 하면서 세계적십자사를 통해서라도 편지 왕 도록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
래가 중단되지 않게끔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봉행사와 연계된 생사 확인 의뢰는 시한이 정해져 있
이렇게 남측 가족들은 상봉자로 뽑히고 난 직후, 상 어 수를 늘린다 해도 북측에서 확인이 가능할 지 알
봉 직전, 그리고 상봉 당시에도, 헤어지고 나서도 틈 수 없다. ‘전면적인 생사 확인’ 말 그대로 이산가족의
날 때마다 건넨 기자의 마이크에 서신 교환이라도 가 생사를 지속적으로 전수 확인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능하길, 생사확인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서신 교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공간과 시
전했다. 혹여나 남북관계의 순풍을 타고 고향 방문이 간이라는 한계 속에서 짧은 편지가 이산가족들의 한
가능해지거나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 싶어 손 글씨로 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또박또박 가족의 주소를 적어가는 분이 많았다. “세월이야 가보라지. 우리 마음 늙을소냐.”라는 심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보다 더 정으로 긴 세월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온 남북 가족들.
많은 분들이 수시로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상설면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북측 단장인 박용일 조
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공감대를 이뤘다며 연
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한 번 더 추진하겠다고 밝혔
다. 빠르면 10월 말쯤 추가 상봉이 이뤄질 수 있다는
소식이다. 100살까지 살라는 모호한 염원 대신 남북
이 나서서 이산가족의 형제, 부모의 안녕이라도 확인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시대가 저지른 비극을
딛고 살아온 이산가족 앞에서 나는 머리를 숙인다.
허효진은 KBS 통일외교부 기자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을 전공
하고 정치외교학을 부전공했다. 2016년 엄혹했던 남북관계를 보
도하고 올해 달라진 남북관계와 그 미래를 보고 전하고자 다시 통
일부에 출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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