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민족화해 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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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세계에 떨어진 바리의 분투기
소설 <바리데기>는 북한, 중국, 영국을 횡단하며 거 인 런던의 이주자 밀집지역에 겨우 몸을 숨길 곳을 찾
친 삶을 이어가는 북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배 게 된다. 대부분 불법 이민자들이 모여 있는 이 변두
고픔에 고향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으며, 떠도는 삶을 리 지역에서 무슬림인 ‘알리’와 결혼을 하게 되고 주
살다 결국 유럽까지 흘러들어가게 된다. 지금의 난민 변의 소외받은 자들과 또 다른 가족을 만들게 된다.
이 그러한 것처럼 살기 위해서 여기저기를 떠돌며 현 알리와의 사이에서 딸 아이 순이를 낳으며 안정을 찾
재의 모든 문제를 온 몸으로 겪는 존재인 것이다. 아가는 듯 했지만 9·11 사건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벌
주인공 바리는 청진에서 태어났다. “무엇보다도 국 이고 있는 그곳에서 그녀의 삶은 다시 한 번 큰 소용
경이 가까워 물자교역이 빈번해서 일반 인민들도 바 돌이를 만나게 된다. 바로 남편 알리의 동생이 이슬
깥물건을 수월하게 만져볼 수”있었던 그곳에서 외부 람 극단주의자가 되어 파키스탄으로 갔다는 것을 알
와의 접촉은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조선족 미꾸리 아 게 되고, 남편이 동생을 구하러 갔다가 행방불명이 되
저씨가 시시때때로 중국의 물건 등을 가지고 아버지 자 바리는 다시금 외톨이가 된다. 게다가 딸 순이 마
를 찾아오는 것을 지켜봐왔던 바리에게 중국은 낯선 저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바리는 다시는 회복될 수
곳이기 보다는 언제든 이동할 수 있는 현실의 공간이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을 다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기도 했다. 상당수의 청진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 알리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리 또한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고향을 떠나 중국으로 갖은 고초를 겪은 후 돌아오게 되면서 바리는 다시금
국경을 넘어 삶을 꾸려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바리의 희망을 꿈꾸기 시작한다. 이들 부부의 새로운 삶을 암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홀로 남은 바리는 중국 시하는 아이가 바리의 뱃속에 자리 잡았을 때 즈음 또
에서 난민적 삶을 이어가게 된다. 다시 런던 한복판에서 테러를 경험하게 되고 부부가
중국에서 바리는 고향 북한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혼동 속에 눈물짓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마주하게 된다. 중국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자
본주의적 욕망이 가득한 이중적인 공간이다. 그곳에
자본주의적 가치가 확산되면서 인간의 존엄성은 헌 세계적 맥락에서 바라본 탈북민 문제
신짝마냥 내팽개쳐지고, 값싼 상품으로 취급되는 사
람들이 힘겨운 삶을 연명한다. 특히 극한의 조건에 작가 황석영은 북한을 방문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
서 고된 노동을 해야만 하루하루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세 편의 소설을 구상했
‘불법적’ 이주여성에게는 더더욱 힘겨운 곳이다. 안마 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신천대학살의 현재적 의미
방 ‘낙원’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기 시작한 바리에게 를 다룬 <손님>과 조선에서 태어난 심청이 중국, 싱
잠시나마 가족이 되어 준 ‘샹’언니와의 따뜻한 시간도 가포르, 일본을 거치면서 거친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
잠시 뿐, 그녀와 샹 언니는 국제 인신매매단에 속아 를 담은 <심청, 연꽃의 길>, 그리고 북한 여성 바리의
팔려가게 된다. 삶을 다룬 <바리데기>까지 모두 한국적 형식과 서사
밀항선에서의 ‘지옥과 같은 경험’을 한 이후 마침내 에 현재적 상황을 엮어낸 것들이다. 작가는 과거의 구
영국에 도착한 바리는 온갖 민족, 언어, 문화가 뒤섞 전문학이나 설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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